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시프 브로즈 티토 (문단 편집) === 반나치 지도자 === 귀국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당에 입당해 '''티토'''라는 가명으로 활동했고, 각 공장의 파업을 주도하다가 유고슬라비아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받고 5년간 수감 생활을 한다. 이후 [[스페인 내전]]에 참가[* 이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논란이 많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티토의 내전 참가를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주장은 실제로 스페인에서 싸운 것은 아니고, [[국제여단]] 지원자들을 파리에서 모아서 스페인으로 보내는 코민테른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관리 차 스페인에 여러 번 왔다 갔다는 것.]하는 등 해외를 배회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이 [[이탈리아 왕국]], [[헝가리 왕국]]과 함께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일으키자 귀국해 [[빨치산]] 부대를 이끌며 게릴라전으로 나치 군대와 맞서 싸운다. 1930년대 유고슬라비아 왕실은 독일에 우호적이였는데, 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인들의 용맹함을 높게 산 아돌프 히틀러가 유고슬라비아에게 상당한 경제적 편익을 제공했고, 이탈리아와 헝가리가 유고슬라비아의 영토를 노리고 있어서 이를 막기 위해선 독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은 제1차 세계대전과 범슬라브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매우 극심한 반독감정이 있었고 개전 중 추축국에 가입하자 섭정인 [[파블레 왕자]]의 독단에 질린 왕 [[페타르 2세]][*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페타르 2세의 어린 나이로 인해 섭정이 통치하고 있었다.]와 반독 성향의 측근들이 영국의 후원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이로인해 새로 생긴 내각은 반독/친연합 성향을 보여서 이탈리아의 삽질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있던 히틀러를 자극해 [[유고슬라비아 침공]]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1일만에 항복한다. 하지만 독일은 티토가 지휘하는 [[빨치산]]에 의해 적지 않은 피해를 본다. 티토가 지휘하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은 매우 효율적인 유격전을 벌였으며, 이탈리아와 헝가리, [[크로아티아 독립국|크로아티아]]는 자기네 구역만 지키고 있었던 탓에 다른 전선에도 병력이 부족했던 독일은 유고에 7만의 병력을 박아놔야 했고, 루마니아의 유전과 우크라이나 보급로와 연결된 중요한 지역이였던 탓에 극심한 병력 부족에 시달린 전쟁 후반까지 병력을 주둔시키게 하였다. 오죽 히틀러가 열받았으면 티토를 붙잡기 위해 [[오토 스코르체니]]가 지휘한 특공대가 투입되어 티토의 본거지를 급습하기까지 했고, 실제로 거의 붙잡힐 뻔 했으나 티토는 여기서도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후 잠시 아드리아 해의 휴양지 비스 섬에서 기거하면서 [[윈스턴 처칠]] 등 연합군 최고위층 인사들을 만나 파르티잔 임시정부의 지위를 놓고 회담을 하는 등, 거의 동맹국 수장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전쟁 전에는 무명인사에 불과했던 티토의 명성이 점차 높아진 것이다. 추축군 한복판에서 빈약한 장비를 가지고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이상의 전과를 올린 한편, 비록 공산주의자였지만 서방 측의 지원을 적잖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소련과의 관계도 좋지만은 않던 관계로 양측의 사이에서 정치적 협상도 적지 않게 벌여 많은 실익들을 챙기기도 했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후에도 티토는 동유럽권에서 [[냉전]] 내내 서방 측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낼 수 있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마피아들의 밀무역 루트로 애용되었다. 200척의 밀수선을 잡는 이탈리아 해경선은 1척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소련군]]이 유고슬라비아 영토 내로 진입하여 독일 국방군을 몰아낼 때, 수도인 [[베오그라드]] 탈환을 소련군과 함께 함으로써 파르티잔의 손실을 줄임과 동시에 독일군을 유고슬라비아에서 퇴치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소련이 파르티잔 투쟁 기간중 제대로 된 도움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는 것과, 티토 자신의 명성이 서방세계에서도 높다는 점을 바탕으로 해서 심지어 소련군이 오래 주둔하면 소련군과도 싸울 생각이 있다는 의지를 보여 소련은 유고슬라비아에 상징적인 병력만 남기고 철수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다른 공산정권이 들어선 동유럽의 국가들과는 달리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